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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 POEMS

모조 숲, 이민하



날씨는 뒤에서 다가왔고

우리는 걸으면서도 목을 자꾸 돌렸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털을 키웠다.

꼬리뼈에 나무를 심은 녀석도 있다.

빌딩들 사이에 강물이 있고 버려진 숲이 있다.

날개가 걷힌 새의 얼굴과

구름의 건축.

밤과 낮에는 색깔이 다른 공기가 필요하다.

고양이가 필요하다. 당신과 내가 반반씩 필요하다.

검은고양이소셜클럽.

표정이 없는 당신과 말이 없는 내가

수염처럼 멤버가 된다.

 

아침마다 새로운 음악이 분다.

물결치듯 드럼을 치는 호흡과

바람의 애드리브.

눈을 감고 빗줄기를 튕기는 어둠은 우리의 선생.

그는 텐트를 치고 나는 기타를 치고.

눈을 감으려면 부릅뜨는 연습을 하세요.

사라지세요. 줄을 서세요.

줄을 서서 우리는 눈을 맞췄다.

연주를 모르는 당신과 악보를 모르는 내가

거울처럼 주고받는 립싱크.

줄을 튕기며 우리는 입을 맞췄다.

 

간밤에 떠내려 온 사람들을 싣고

마부인 나는 숲 속의 오후를 달린다.

그들 중 절반은 익사체다.

발목이 잘린 소년들은 주저앉아 더는 자라지 않았다.

소년들이 성장을 멈춰도 계단을 끝없이 오르며

지뢰가 대물림되는 건물들 사이

숲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숲을 지나는 13월의 산책.

햇빛은 빠르게 돌아가고

녹색과 검정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나무의 왕국 송충이의 왕국 구름의 왕국.

그 사이로 팝콘처럼 떨어지는 새들.

 

치마가 찢긴 맨발 소녀들이 쓸려 내려왔다.

물속에 누워 상처가 아무는데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무는 소문들.

유람선을 끌고 다니며

잠든 소녀들을 낚시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백마 탄 왕자는 그만 보내세요.

차라리 손목을 끊으세요. 절필하세요.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그다음엔 무엇이 필요한가.

베이비가 필요한가.

우리는 모두 서로의 베이비.

입맞춤과 시치미의 논란 속에서,

 

나는 숲을 캐스팅한다.

대본이 필요한 사람들은 강 건너로 돌아갔다.

숲을 나오면 숲은 사라진다.

나는 바닥에 목을 내려놓고 누워 있다.

말 한 마리가 숲 속을 달린다.

말굽 소리가 내 목을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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