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나라에서

산들거리는 항상풍은

나의 숨을 고르게 합니다


당신입니까

날 경건하게 만들고

날 착하게 만들고

미치게 만들고


이 철없이

끝없이 산들거리는

흠흠한 바람은

당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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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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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보는 버릇이 있다 

셔츠에 좀이 슬어 잔구멍이 났지만

가슴을 파먹고 옮겨가는 벌레들을 막을 수 없다

숫돌을 꺼내 심장을 간다

무딘 채로 버틸 수 있다면 끝내 버텨보는 것인데

벼르고 별러도 뱃머리를 댈 곳이 없는 

길이 그물에 걸린다   

  

겁먹은 바람이 우편함에서 

납기가 지난 사망 통지서를 집어다 준다 

납기를 대지 못한 생은 몇 퍼센트의 연체료를 가산하는지

잘 벼린 정맥으로 

북극성 귀퉁이에 풀어진 나사를 조인다

추위에 새들마저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냉랭하게 마음을 사리고 잠든 뱀이 소스라친다 

수화기의 끈을 풀어놓고

새들이 내려앉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올해는 果樹도 쉬는 해다 

해가 찢어진 그물을 당기며 하혈을 한다 

해초 무침에서까지 나프탈렌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폐선의 머리를 쪼개 불을 피운 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면 

가슴이 아픈 물고기를 모조리 붙잡아 식탁에 올릴 수 있다

낡은 절을 만나면 그 가슴에 들어가 못을 줍고 

찬물을 떠서 마신다

바위에 노랑 각시 붓꽃 뿌리가 얼룩져 있다 

꽃은 죽어서도 눈을 빤히 뜨고 사람을 홀리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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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무덤을 팝니다 미리 나의 명복을 빕니다 명복을 비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를 위한 너의 오열도 오열 끝의 오한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승에서의 지복도 나는 꿈꾸지 않습니다 궁극이 폐허입니다 한 세기가 지나갈 때마다 한 삽씩 뜨거운 땅을 파고 이 별의 핵 지대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너를 만나길 지나치게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 안에 들어가 미리 누워봅니다 생각보다 깊고 아득합니다 그렇지만 무섭고 춥습니다

 

  너는 내 귀에다 대고 거짓말 좀 잘해주실래요 너무나 진짜 같은 완벽한 거짓말이 그립습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찾듯 거짓말 덕분에 이 우주는 겨우 응석을 멈춥니다 어지럽습니다 체한 걸까요 손을 넣어 토하려다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여긴 왜 이렇게 추운가요

 

  너는 여기로 올 때에 좀 조심해서 와주실래요 뒤를 밟는 별들과 오다 만난 유성우들은 제발 좀 따돌리고 너 혼자 유령처럼 와주실래요 내 몸은 너무 오래 개기월식을 살아온 지구 뒤편의 달, 싸늘하게 식었을 뿐 새가 가지를 털고 날아만 가도 요란을 떠는, 풍화도 침식도 없는 그늘입니다 뜨거운 속엣것이 고스란히 보존된 광대한 고요란 말입니다 춥습니다

 

  칼을 들어 한 가지 표정을 새기느라 또 한 세기를 보냈습니다 나를 비출 거울이 없었으므로 아마도 난자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해보았습니다 한 가지 표정이기를 바랍니다 피를 너무 흘려 몸이 좀 싸늘합니다 냉기 가득한 살갗에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가 반가워 죽겠습니다

 

  쥐똥나무 꽃향기가 지독해서 귀를 틀어막고 누워 있습니다 이 꽃이 지고 나면 이 별에는 더위가 시작될 겁니다

 

  너는 지금 간신히 내 몸속에 도착해 있습니다 해수의 밀도는 낮아집니다 간빙기를 끝내는 소리가 지구 바깥에서 우렁찹니다 깊은 땅속이 먼저 뜨거워지고 빙산은 모든 것을 묵인하고 버티려다 쩍쩍 갈라져 천둥 같은 울음을 보냅니다 눈물이 이토록 범람하면 지형이 곧 바뀔 겁니다 내 몸에서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서로 부딪혀 얼음 멍이 들고 있습니다 무정할 수는 없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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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빛 

1 

떨어지는 순간 
빛은 
하얀 공간에 
꽃병도 없이 어딘가 꽂힌 
꽃이 된다. 
낱말도 없이 
문장에 
꽂힌 
한 송이의 
꽃이 된다. 
고층의 건물이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중풍에 걸린 
개를 타고 돌아다니는 
어느 
삭막한 나라에서 
신의 
손에서 풀려 나오는 순간 
빛은 
미친듯이 확확 타는 
꽃이 된다. 

2 

그는 
알 수 없는 종교가 되어 
공중에 
빛나고 있다. 
그는 
변신하여 
떨어진다. 
땅 위에서 
반짝이는 사람의 눈과 눈 속에 
조용히 쉬며 
빛나고 있다. 
알 수 없는 낱말과 눈짓이 
출렁거리고 있다. 




Ⅱ. 환상의 땅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 뜰의 
달콤한 구석에서 
언어들이 
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들 중의 
몇몇은 
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 죽고. 
나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도 
뚜욱 뚜욱 
언어들이 죽는다. 
건강한 언어의 
아이들은 
어미의 둥지에서 
알을 까고,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에 
새가 되어 
내려와 쉰다. 
의식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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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전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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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한밤중 세탁기에서도 멜로디가 흘러나오지

냉장고에서도 가방 속에서도

심지어 변기에서도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로부터의 답신

당신들이 보낸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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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종이뭉치를 던져주고 나는 자주 어떤 문장에 희망을 감금하였으나 그는 매번 문장에 쥐구멍을 내고 달아났다 볕든 쥐구멍을 몇 개의 낱말로 메운 뒤 다시 그를 협소한 문장 안에 가두었다

 

너는 없다

 

좁은 문장은 벽과 바닥이 단단했다

빈틈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그러고 나는 비누처럼 웅크렸다

그는 없는 손을 뻗어 나를 문지르고 없는 얼굴을 씻고

없는 머리카락을 빗어내렸다 다시 어디론가 나가려고 행동하였으니

없는 꿈을 꾸는 그가 나는 다만 우스울 뿐이었다

그는 없는 옷을 차려입고 없는 몸을 일으켜 없는 거울을 향해

없는 미소 한번 지어보이고 없는 신발을 신고

없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없어져버렸다

 

나는 방 안을 쥐새끼처럼 뛰어다녔다

없는 그가 빠져나간 없는 방을 나는 서둘러 지웠다

더 정교하게 썼다

 

없는 방도 없는 방에 너는 없다

 

그러나 그는

없는 방도 없는 방에 앉아 없는 손도 없는 손을 뻗어 없는 문도 없는 문을 열었다

굳이 말하자면 실은 없어진 줄도 모르게 없어졌다

 

 

나는 없는 방도 없는 방에 없는 창을 내고 없는 하늘에 없는 달을 띄웠다

없는 어린왕자처럼 없는 의자에 앉았다

까마득한 발아래 볕든 쥐구멍처럼 지구가 떠 있었다

아니 뚫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랫동안 치열했다

 

나는, 나와

없는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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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이 가렵다.

 

한 손에는 흰 돌을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다.

 

우산 밖에는 비가 온다.

 

나는 천천히

어깨 너머로 머리를 돌려

등 뒤를 본다.

 

등 뒤에도 비가 온다.

 

그림자는 젖고

나는 잠깐

슬퍼질 뻔한다.

 

말을 하고 싶다.

피와 살을 가진 생물처럼.

실감나게.

 

흰 쥐가 내 손을

떠나간다.

 

날면,

나는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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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종이 위에서 나는 기다린다

얼음의 결정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물처럼

발설하지 않은 이름을 대신할 풍경이 몰려올 때까지

 

월요일에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지

아니 화요일 아니 수요일 아니 목요일 아니 금요일

이미 잃었는데도 다시 잃고야 마는 요일의 순서들처럼

수면양말에 담긴 너의 두 발은 틀린 낱말만 골라 디뎠지

 

이곳은 너무 어둡고 너무 환하고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다

이 흰색을 이 검은색을 고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고아에게

오늘의 심장은 어제의 심장이 아니란다

건초더미라는 말은 녹색의 풀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말

세계의 끝으로 밀려난 먼지들의 춤도 이와 마찬가지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단다

 

말없는 자매들처럼 돌아누워 나누는 애도의 목례

검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는 이름 하나를 흘려 쓴다

 

아득히 맴도는 이름: 너를 부를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흑연의 어조로 천천히 닳아가는 이름: 우리는 함께 혼자였다

입 속에서만 부풀려온 단 하나의 이름: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아껴야만 했다

 

언제나 나는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한 순간조차도 도착하고 싶었다

 

이대로 얼마나 오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면 작고 둥근 흑점으로 번져가는 얼굴

나란히 누워 눈멀던 날들의 빛은 어디로 사라졌나

 

세계의 끝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녹고 스미는 것들이 두 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이상하게 푸르스름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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