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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찾는 사람들 오랜 갈증을 앓은 사람들의 눈을 보면어쩐지 모두 크고,축축했고,아주 짠 냄새를 풍겼다물고기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물을 찾아 긴 행렬을 이루다바닷가 즈음에서사라졌다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어디로 가서 연이어 익사했을까뭍에선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파도가 삼킨 갈증에 대해 생각하다유해들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생각했다아니,물고기가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허파를 버리고슬프게 벌어지는 아가미를 얻었다 바다는 가장 낮은 지대의 역사를 기록하므로나는 바다가 눈물로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믿는다눈물은 한 번도 슬픔을 배신한 적이 없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주저앉으면,녹아내릴 것만 같다 더보기
「심해어」 여는 글 못생겼지만빛나는 심해어들과역시 못생겼지만슬픈 우리 인간들 모두 행복하라심해에서 더보기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 정화진 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장독마다 물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이 물에 잠겨 있지 뭐예요 아가씨, 이상한 꿈이죠 아이들은 창가에서 눈 뜨고 냇물을 끌고 꼬리를 흔들며 마당가 치자나무 아래로 납줄갱이 세 마리가 헤엄쳐 온다 납줄갱이 등지느러미에 결 고운 선이 파르르 떨린다 아이들의 속눈썹이 하늘대며 물 위에 뜨고 아이들이 독을 가르며 냇가로 헤엄쳐 간다 독 속으로 스며드는 납줄갱이 밤 사이 독 속엔 거품이 가득찬다 치자향이 넘친다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새언니, 그건 고기알이었어요 냇가로 가고 싶은 아이들의 꿈 속에 스며든 것일 뿐 장마는 우리 꿈에 알을 슬어 놓고 아이들을 눈 뜨게 하고 향기로운 날개를 달게 하고 아이들은 물 속에서 울고불고 날마다 빈 독을 마당에 늘어 놓게 하고 더보기
너는 묻는다, 이수명 숲 속에서 네가 나왔는데 화분을 들고 서 있었는데 화분에는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아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너에게 말했지 화분은 단단하지 않다고 네가 붙잡는 대로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있다고 너는 말했지 시신을 찾는 사람들이 여태 숲속에 있어서 숲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시신이 텅 비어 있어서 시신에는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아서 시신이 없다. 처음에 없다. 하지만 시신을 찾는 사람들이 여태 숲속에 있어서 숲을 늘리고 늘려서 그래 숲을 들치고 마침내 시신이 발견되는 것이다. 시신으로 나를 몰아내는 것이다. 나는 없다. 처음에 없다. 시신이 웃는다. 숲 속에서 네가 나왔는데 너는 누구의 시신인가 너는 화분을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묻는다. 더보기
다정과 다감, 황인찬 한 사람이 자꾸 공원을 헤매는 장면을 상정해 본다 두 사람이 물 위에서 노를 젓는 장면을 병치해 본다 한낮의 공원, 하고 떠올리면 떠오르는 것들을 한낮의 공원이라는 말이 대신해 주고 있다 고수부지의 두 사람, 바글대는 여름의 날벌레들, 모두가 내린 버스에서 홀로 내리지 않는 한 사람 같은 그러한 장면이 이 시엔 없고 영화를 보는 장면이 갑자기 끼어든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이 죽는다 원래 죽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이 죽는다 영화 밖에서도 사람은 죽지만 거기에는 자막이 없다 이 시에는 다른 어떤 시들처럼 사람이 등장하고, 그 사람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공원으로 나오면 잔디를 밟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쓰인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현대의 한국어 문장은 왼.. 더보기
순간의 꽃 - 고은 中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나는 달랑 혼자인데 더보기
이은규,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더보기
독주회, 성동혁 너는 언제쯤 우리라는 말 안에서 까치발을 들고 나갈 거니내 시집의 번역은 죽어서도 네가 맡겠지만너 말고는 그 누구도아픈 말만 하는 시인을 사랑하진 않을 것이다나는 먼 곳에서 오역들을 모아 편지를 만들 것이다잘못된 문장들을 찾다 보면우리가 측백나무 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견딘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너는 아마 그때도 사랑이 오역에 의해 태어났단 걸 믿지않을 것이다나는 혼자서 불구덩이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를 홀로 두지 마소서 (이 부분에선 네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나는 더 이상의 불을 삼킬 수 없습니다매일 기도한다지상은 춥고 외로운 지대라 믿었다 등고선을 이으며슬픔은 직선으로 왔는데그럴 때만 곡선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우리의 얼굴은 참 구불구불하구나어느새 낮아지고 높아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