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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 POEMS

그늘 속의 탬버린, 이영광 지금은 그늘이 널 갖고 있다그러니까 넌 빛이야빛날 수 없는 빛견디기는 했지만 스스로를 사랑한 적 없는 독신,너는 예쁘지 아니, 슬프지탬버린이 울 때까지 탬버린은 그치치 않고여전히, 검은 꺼진 눈을 뜨고 있는흑백텔레비전텔레비전그늘은 결국 인간관계지이것에 걸리기 위해 애썼다너는 널 절대로 잊을 수 없다사랑한다면 이렇게 오래 같이 살까?넌 함부로 죽었고나는 눈물이 흐른다화양연화 화양연화 화냥년아너는 네가 괴롭다금방이라도 그쳐버릴 것처럼탬버린은 영원히 짤랑거린다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사라졌는데도,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 더보기
목요일, 허연 사람들 틈에 끼인 살아본 적 없는 生을 걷어내고 싶었다.모든 게 잘 보이게 다시 없이 선명하게 난 오늘 공중전화통을 붙잡고 모든 걸 다 고백한다. 죽이고 싶었고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린다고.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 죽이 끓든 밥이 끓든 나는 변하지 못했고 또 목요일.형상이 없으면 그림이 아니야. 따귀 한 대에 침 한 번씩 뱉고 밤을 세우면 神을 만날 줄 알았지. 그림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라는 녀석들 몇 명과 그들의 자존심과 그들의 투항과 술을 마신다. 그중에 내가 있다. 오늘은 목요일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 그 꿈이 나한테 이럴 수가. 더보기
나는 천당 가기 싫어, 마광수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천당은 너무 밝대 빛밖에 없대 밤이 없대 그러면 달도 없을 거고 달밤의 키스도 없을 거고 달밤의 섹스도 없겠지 나는 천당 가기 싫어 더보기
기형도, 대학시절 나무 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더보기
사령(死靈), 김수영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더보기
단장, 임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더욱이 옳은 희망을 실천한다는 것은……그러나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일층 더 어려운 일이다비록 죽음이 일체를 무덤 속에 파묻는 때라도…… 비열이란아무 거리낌 없이 이것을 실행하는 인간이다더욱이 그것을 변명하는 교지어떠한 무지도 이보다는 선량하다. 범용한 詩人만이 항상 말의 부족을 한탄한다한번도 이름 없는 풀잎이지상에 나본 일은 없었다詩人은 이름 없는 풀에서 이름을 발견하는 인간이다그러나 죽은 말은 자연의 생명을 빼앗는다. 길아직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몽매한 신념을 팔고 있는 詩人이 있다너에게는 너의 길나에게는 나의 길예술의 길을 걷는 모든 시민에게 자유가 있다…… 이런 자유 속에서 노예의 자유와 향락의 자유의 깊은 모순이 숨겨 있다반드시 길의 일단은 로마로다른 일단은.. 더보기
모조 숲, 이민하 날씨는 뒤에서 다가왔고우리는 걸으면서도 목을 자꾸 돌렸다.전염병을 막기 위해 털을 키웠다.꼬리뼈에 나무를 심은 녀석도 있다.빌딩들 사이에 강물이 있고 버려진 숲이 있다.날개가 걷힌 새의 얼굴과구름의 건축.밤과 낮에는 색깔이 다른 공기가 필요하다.고양이가 필요하다. 당신과 내가 반반씩 필요하다.검은고양이소셜클럽.표정이 없는 당신과 말이 없는 내가수염처럼 멤버가 된다. 아침마다 새로운 음악이 분다.물결치듯 드럼을 치는 호흡과바람의 애드리브.눈을 감고 빗줄기를 튕기는 어둠은 우리의 선생.그는 텐트를 치고 나는 기타를 치고.눈을 감으려면 부릅뜨는 연습을 하세요.사라지세요. 줄을 서세요.줄을 서서 우리는 눈을 맞췄다.연주를 모르는 당신과 악보를 모르는 내가거울처럼 주고받는 립싱크.줄을 튕기며 우리는 입을 맞췄다... 더보기
긴 손가락의 시, 진은영 시를 쓰는 건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