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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中



뭐 희미해진 건 그의 이름만이 아니다. 습기가 그려놓은 그 벽화 아래서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들, 지나고 보니 지독히 가벼웠던 맹세들, 새끼 원숭이들처럼 서로를 핥으며 맛보았던 짭조름한 땀의 미각, 사랑하고 다투고 다시 사랑했던 그토록 달콤했던 투쟁의 순간들, 그 모든 것들도 이 사진처럼 제 색깔과 촉감을 잃어버린 기억 저편에서 나리꽃 빛처럼 몽롱할 뿐이었다. 필름을 망가뜨린 건 시간이 아니라 그 지독했던 습기 탓일 것이다.

존재의 의미를 재는 내 속의 저울 눈금을 조정하고 나자 찾아온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 [10-11p]




“넌 언젠가 개미를 닮고 싶다고 말했지. 그들은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고.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지난 시간의 일로 상처받지도 않는다고. 개미를 닮고 싶은 네가 나쁜 게 아냐. 널 개미를 닮고 싶도록 만든 누군가가 있었어.”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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