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종이 위에서 나는 기다린다

얼음의 결정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물처럼

발설하지 않은 이름을 대신할 풍경이 몰려올 때까지

 

월요일에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지

아니 화요일 아니 수요일 아니 목요일 아니 금요일

이미 잃었는데도 다시 잃고야 마는 요일의 순서들처럼

수면양말에 담긴 너의 두 발은 틀린 낱말만 골라 디뎠지

 

이곳은 너무 어둡고 너무 환하고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다

이 흰색을 이 검은색을 고아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고아에게

오늘의 심장은 어제의 심장이 아니란다

건초더미라는 말은 녹색의 풀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말

세계의 끝으로 밀려난 먼지들의 춤도 이와 마찬가지

소리가 되기 위해 모음이 필요한 자음들처럼 이제 그만 울어도 좋단다

 

말없는 자매들처럼 돌아누워 나누는 애도의 목례

검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는 이름 하나를 흘려 쓴다

 

아득히 맴도는 이름: 너를 부를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흑연의 어조로 천천히 닳아가는 이름: 우리는 함께 혼자였다

입 속에서만 부풀려온 단 하나의 이름: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아껴야만 했다

 

언제나 나는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한 순간조차도 도착하고 싶었다

 

이대로 얼마나 오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면 작고 둥근 흑점으로 번져가는 얼굴

나란히 누워 눈멀던 날들의 빛은 어디로 사라졌나

 

세계의 끝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녹고 스미는 것들이 두 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이상하게 푸르스름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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